2011년 03월 22일
조명희 회상-장인덕
‘레닌기치’ 1986년 12월 22일
조명희 선생의 시를 읽을 때
장인덕
지금부터 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지난 기억에도 아득한 1928년의 일이 새삼스레 나의 눈앞에 떠오르듯하다. 내가 태어난 원동 도시인 니꼴쓰크-우쑤리쓰크에서 7년제 조선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였고 시도 애독하였다. 그때 조선어 교과서도 없었고 조선말 책을 구하기도 아주 어려웠다.
키가 얼마 크지 않고 몸매는 좀 여위여 보이는 호리호리한 중년 나이인 리인 선생이 우리에게 조선어를 배워주었다. 어느 한 조선어시간에 그 선생님은 시 ‘청개구리’를 읊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시를 암송하라고 몇 분간의 시간을 늘 주었다. 내가 제일 먼저 시를 따로 외우고 류창하게 읽자 선생은 나를 칭찬하였다. 그 후부터 나는 시 읽기에 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봄 잔디밭’, ‘맹세하고 나서자’, ‘짓밟힌 고려’, ‘시월의 노래’ 등은 오늘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시를 읽기는 좋아했지만 그때까지도 누가 그 시를 썼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또 알아보려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리인 선생이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애독하고 있는 시들은 조선에서 이름 난 조명희 선생이 지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1928년에 그 분이 조선에서 쏘련으로 들어왔다고 말하여 주었다.
그 말을 듣게 되자 은근히 나는 ‘그 시인과 한 번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편 나는 조명희 선생의 시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사람들의 필기장들과 ‘선봉’ 신문에서 ‘볼세위크의 봄’, ‘시월의 노래’, ‘짓밟힌 고려’를 비롯한 조명희 선생의 십 편의 시들을 베끼어 써 엄성스레 따로 외우기도 하고 랑송하기도 하였다. 그후로부터는 어느 명절맞이나 모임이 있을 때면 사람들 앞에서 그 시들을 랑송하군 하였다. 그때 나에게 보내주던 박수소리는 지금까지도 나의 귀에 울리는 것 같다.
1929년에 나는 그 소학교를 졸업하자 우쓰리쓰크 시에 있는 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3층으로 된 그 학교에서 남쪽으로 나아가면 소풍거리라는 조선인촌이 있었으며 서쪽으로 가면 물결이 그리 세차지 않은 쑤이풍강이 흘러갔다. 여름이면 우리는 그 강에서 미역을 감았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얼음판에서 꼰끼타기를 하였다.
1930년도였다. 어느 날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심결에 교무실로 들리게 되었다. 그때 나는 리인 선생을 비록한 여러 교원들이 앉은 가운데 낯선 분이 한 사람 보였다. 그의 나이는 40살이 될까 말까 하였고 낯색이 거므스레한 데다 광대뼈가 좀 두드러진 길쑴한 얼굴에 검은 머리를 뒤로 제쳐 빗었고 당당하게 생긴 분이였다.
그가 바로 조명희 선생이였다. 어쩐지 그때 나는 반가운 생각보다 부끄러움을 더 느꼈다. 리인 선생이 나더러 다짜고짜로 시 ‘짓밝힌 고려’를 랑송하라고 지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여느 때보다도 더 씩씩하게 시를 랑송하였다. 그때면 나에게는 시를 랑송하는 일에서 경험도 얼마간 없지 않았던 때였다. 학교를 수리하기 위한 비용에 보태주려고 교직원들과 학생들로 편성된 연예단에 나도 가담되어 여러 도시들과 구역을 다니면서 순회공연을 하면서 출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 시 구절을 랑송할 때 벌써 박수소리가 울려나왔다. 바로 이때에 그 낯선분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는 내 시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시를 썩 잘 읽어서 박수를 쳤네…” 하시면서 미소 어린 얼굴로 나의 두 손을 잡아 흔들어주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서야 리인 선생이 그 낯선 분이 조명희 선생이고 내가 랑송한 시도 바로 그 선생이 지은 시라는 것을 말하여 주었다.
그 후 조명희 선생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유감스럽게도 벌써 멀리로 떠나가셨다고 하였다.
1932년도였다. 우리 연예단은 또다시 순회공연을 떠났다. 이번에는 쑤이퐁 구역 륙성촌(뿌찔롭까)에 들르게 되였다. 매번 출연은 큰 시련이었다. 그러나 ‘짓밟힌 고려’와 ‘시월의 노래’만은 랑패없이 또 잘 랑송하여 대환영을 받았다. 나도 조명희 선생처럼 겸손하게 ‘내가 시를 잘 읽어 관중들이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시 자체가 훌륭하기에 그렇게 대환영하리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실로 조명희 선생의 시들은 어느 것이나 다 내용이 풍부하고 사상성이 놓으며 운률과 리듬이 빼어나 그 시들을 읽는 사람마다 감탄하였다.
‘짓밟힌 고려’는 조선인민을 악독하게 착취하고 압박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을 폭로하는 산문시이다. 뼈가 불러지도록 일을 해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헤매도는 어린이, 자란이들의 비참한 영상이 그 시에 묘사되었다. ‘락동강’을 비롯한 그의 많은 다른 시들도 다 열렬한 애국심으로 충만된 시들이다.
공연이 끝나자 관중들 앞에 인사를 할 때 조명희 선생은 무대 위로 뛰어 올라오시어 만족해하는 표정으로 나의 두 손을 끌어당겨 자기 가슴에 대고는 힘있게 끌어안아주었다. 그때 나는 너무도 황송하고 반가워 그 선생님의 인자한 얼굴만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선생의 부인도 무대로 올라와 나를 축하하여주었고 집에까지 초청하였다. 그날 저녁에 나는 밤 늦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50년이나 남아 지난 오늘까지도 그의 너그럽고 친절한 모습은 잊어지지 않는다. .
# by | 2011/03/22 19:19 | 조명희 문학의 언저리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