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희 회상-장인덕

 

 


‘레닌기치’ 19861222


조명희 선생의 시를 읽을 때


장인덕


지금부터 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지난 기억에도 아득한 1928년의 일이 새삼스레 나의 눈앞에 떠오르듯하다. 내가 태어난 원동 도시인 니꼴쓰크-우쑤리쓰크에서 7년제 조선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였고 시도 애독하였다. 그때 조선어 교과서도 없었고 조선말 책을 구하기도 아주 어려웠다.

키가 얼마 크지 않고 몸매는 좀 여위여 보이는 호리호리한 중년 나이인 리인 선생이 우리에게 조선어를 배워주었다. 어느 한 조선어시간에 그 선생님은 시 ‘청개구리’를 읊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시를 암송하라고 몇 분간의 시간을 늘 주었다. 내가 제일 먼저 시를 따로 외우고 류창하게 읽자 선생은 나를 칭찬하였다. 그 후부터 나는 시 읽기에 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봄 잔디밭’, ‘맹세하고 나서자’, ‘짓밟힌 고려’, ‘시월의 노래’ 등은 오늘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시를 읽기는 좋아했지만 그때까지도 누가 그 시를 썼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또 알아보려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리인 선생이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애독하고 있는 시들은 조선에서 이름 난 조명희 선생이 지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1928년에 그 분이 조선에서 쏘련으로 들어왔다고 말하여 주었다.

그 말을 듣게 되자 은근히 나는 ‘그 시인과 한 번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편 나는 조명희 선생의 시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사람들의 필기장들과 ‘선봉’ 신문에서 ‘볼세위크의 봄’, ‘시월의 노래’, ‘짓밟힌 고려’를 비롯한 조명희 선생의 십 편의 시들을 베끼어 써 엄성스레 따로 외우기도 하고 랑송하기도 하였다. 그후로부터는 어느 명절맞이나 모임이 있을 때면 사람들 앞에서 그 시들을 랑송하군 하였다. 그때 나에게 보내주던 박수소리는 지금까지도 나의 귀에 울리는 것 같다.

1929년에 나는 그 소학교를 졸업하자 우쓰리쓰크 시에 있는 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3층으로 된 그 학교에서 남쪽으로 나아가면 소풍거리라는 조선인촌이 있었으며 서쪽으로 가면 물결이 그리 세차지 않은 쑤이풍강이 흘러갔다. 여름이면 우리는 그 강에서 미역을 감았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얼음판에서 꼰끼타기를 하였다.

1930년도였다. 어느 날 수업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심결에 교무실로 들리게 되었다. 그때 나는 리인 선생을 비록한 여러 교원들이 앉은 가운데 낯선 분이 한 사람 보였다. 그의 나이는 40살이 될까 말까 하였고 낯색이 거므스레한 데다 광대뼈가 좀 두드러진 길쑴한 얼굴에 검은 머리를 뒤로 제쳐 빗었고 당당하게 생긴 분이였다.

그가 바로 조명희 선생이였다. 어쩐지 그때 나는 반가운 생각보다 부끄러움을 더 느꼈다. 리인 선생이 나더러 다짜고짜로 시 ‘짓밝힌 고려’를 랑송하라고 지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여느 때보다도 더 씩씩하게 시를 랑송하였다. 그때면 나에게는 시를 랑송하는 일에서 경험도 얼마간 없지 않았던 때였다. 학교를 수리하기 위한 비용에 보태주려고 교직원들과 학생들로 편성된 연예단에 나도 가담되어 여러 도시들과 구역을 다니면서 순회공연을 하면서 출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 시 구절을 랑송할 때 벌써 박수소리가 울려나왔다. 바로 이때에 그 낯선분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는 내 시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시를 썩 잘 읽어서 박수를 쳤네…” 하시면서 미소 어린 얼굴로 나의 두 손을 잡아 흔들어주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서야 리인 선생이 그 낯선 분이 조명희 선생이고 내가 랑송한 시도 바로 그 선생이 지은 시라는 것을 말하여 주었다.

그 후 조명희 선생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유감스럽게도 벌써 멀리로 떠나가셨다고 하였다.

1932년도였다. 우리 연예단은 또다시 순회공연을 떠났다. 이번에는 쑤이퐁 구역 륙성촌(뿌찔롭까)에 들르게 되였다. 매번 출연은 큰 시련이었다. 그러나 ‘짓밟힌 고려’와 ‘시월의 노래’만은 랑패없이 또 잘 랑송하여 대환영을 받았다. 나도 조명희 선생처럼 겸손하게 ‘내가 시를 잘 읽어 관중들이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시 자체가 훌륭하기에 그렇게 대환영하리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실로 조명희 선생의 시들은 어느 것이나 다 내용이 풍부하고 사상성이 놓으며 운률과 리듬이 빼어나 그 시들을 읽는 사람마다 감탄하였다.

짓밟힌 고려’는 조선인민을 악독하게 착취하고 압박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을 폭로하는 산문시이다. 뼈가 불러지도록 일을 해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헤매도는 어린이, 자란이들의 비참한 영상이 그 시에 묘사되었다. ‘락동강’을 비롯한 그의 많은 다른 시들도 다 열렬한 애국심으로 충만된 시들이다.

공연이 끝나자 관중들 앞에 인사를 할 때 조명희 선생은 무대 위로 뛰어 올라오시어 만족해하는 표정으로 나의 두 손을 끌어당겨 자기 가슴에 대고는 힘있게 끌어안아주었다. 그때 나는 너무도 황송하고 반가워 그 선생님의 인자한 얼굴만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선생의 부인도 무대로 올라와 나를 축하하여주었고 집에까지 초청하였다. 그날 저녁에 나는 밤 늦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50년이나 남아 지난 오늘까지도 그의 너그럽고 친절한 모습은 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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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4614 | 2011/03/22 19:19 | 조명희 문학의 언저리 | 트랙백 | 덧글(0)

고마운 분께

 

고마운 분께 절하며


한 해가 다 가고 새해가 다가오는 세월의 길목입니다. 21세기도 벌써 십 년이나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1226, 아들의 결혼식에 참여하여 주신 데 대하여 고마움을 어찌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겨울 추위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연휴의 귀한 시간을 내어 직접 참석하시거나, 또한 귀중한 정성을 보내 주신 그 뜨거운 사랑을 깊이 평생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따뜻한 인정들이 모여 겨울 추위를 녹이고 식장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이 날은 저희 집안의 역사적인 기념일이어서 두고 두고 기억할 것입니다.

연달아 몇 십 년만의 강추위라며 몰아치더니 다행히 이 날은 다소 풀리고 예식이 끝나며 눈이 펑펑 쏟아져 안심이 되긴 했습니다.

겨울 추위야 당연한 데도 조금만 추워도 너무 호들갑 떠는 세태입니다. 살다 보면 추위도 겪고 인생의 한파도 겪기 마련이지요.


겨울 추위를 견디고 차가운 봄 눈얼음을 뚫고 노랗게 피어나는 복수초福壽草의 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행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이 꽃이 추위 속에서 피어나니 더 예뻐 보이듯 우리 아이들도 추위와 어려움을 견디는 슬기를 배웠으면 싶습니다.

하긴 이 시대 젊은이들은 그저 철부지가 아닙니다. 파리로 신혼여행 떠난다고 했을 때 한파가 몰아친 그곳을 어찌 가느냐는 걱정을 떨치고 가더니 날씨도 좋고 즐겁게 다닌다고 인터넷으로 함박웃음 화면을 보내며 신나서 떠벌립니다. 에펠탑의 점등은 세계적인 뉴스거리이니. 새해를 맞는 풍경은 멋져서 일생을 두고 귀한 추억일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도전과 용기, 기발한 아이디어는 우리의 신동력이겠지요. 그들의 추진을 우리 구세대들은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이제 오만과 편견, 독선과 아집에 얽매어 사는 우리 구세대보다는 순수한 열정이 살아 있는 신세대의 세상은 훨씬 더 밝으리라 기대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날을 맞으면서도,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서도 자기 반성을 못하고, 남의 모범이 되긴커녕 자신의 허물을 감추고, 화해와 포용보다는 변명에 급급하진 않았던지 되돌아 봅니다. 결혼 선물을 받고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세모에 으레 듣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4악장을 따라 웅얼거리며 힘을 받습니다.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에 감명받은 지 31년만에 질병과 가난을 견디고 완성한 교향곡은 얼마나 큰 감명을 안겨 주는지요.

껴안으라, 수많은 사람들이여! 이 입맞춤을 전 세계에 베풀어 주자! 형제여, 별들의 막사 위에 분명 하늘의 아버지가 계신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삶을 누리소서.


2010. 12. 31.

조 성 호 · 이 용 남

by yj4614 | 2011/01/06 10:53 | 기본 | 트랙백 | 덧글(0)

예진에게

 

######## 며느리감 예진에게 ############################


예쁜 글씨로 써 보낸 ‘예비 며느리 예진'의 편지를 보고 어찌 답장을 하나 망설이다가 오늘 함이 간다기에 겨우 급히 쓰려니 막막하다. 워낙 상대를 의식하는 글은 써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은 한동안 뜸하던 아침 산책을 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구나. 용정산림공원을 돌아 눈과 참나무 낙엽이 쌓인 길로 선프라자쪽으로 내려오며 지난 530, 역사적인 너희들 만남이 있던 날을 떠올렸다. 봄이 무르익던 그때 내려오는 길에는 선프라자에서 하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그 앞의 뜨레 삐아니에서는 너희들이 긴 만남을 하며 말이 통하는 시간을 보냈지.

어쩐지 좋은 만남이 될 예감이 들더구나. 공원에서는 마거리트가 만발했고 찔레꽃 향내가 진동하고 노랑붓꽃이 한껏 노란빛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봄이었지. 여름, 가을이 가며 너희들 만남이 무르익어 드디어 결혼에 이르게 되었으니 아침이면 이곳을 지나며 젊은 너희들의 만남을 더욱 생각하게 된다.

연애는 자유로움이라면 결혼은 속박이다. 연애가 같은 곳을 향해 마구 달리는 것이라면 결혼은 한쪽 발목을 묶고 함께 달리는 것이다. 운동회에서 달리는 23각을 연상하면 알 수 있다. 이 경기는 리듬을 타야하고 박자를 맞춰야한다. 한쪽만 잘 달린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불편함을 참고 파트너의 실력을 가늠하며 넘어지지 않도록 달려야 홈에 잘 이르게 된다. 그 홈은 스위트 홈으로‘따스한 보금자리’여야 한다.

좋은 인연을 아름다운 인생으로 승화시키려면 서로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각자 삼십여 년을 따로 살다가 한 집에 살다보면 의견이 다를 수 있으나 대화로 모든 걸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부부와 가족보다 더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는 건 없다고 단언한다. 부부란 마치 야구의 투수와 포수 같아서 작은 사인 하나로, 눈짓 하나로 협조하여 타자란 난관을 넉아웃시킨다.

서로 말 한 마디로 힘을 실어주자.

늘 웃는 얼굴로

늘 즐거운 마음으로


어려움이 있으면 시부모와도 상의하여주렴. 너의 든든한 빽이 되려고 작정하고 있으니 힘을 내고!

고운 꿈을 꾸고 새삶의 설계를 마련하는 것은 너희 둘의 몫이다.

, 새 세상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


2010. 12. 18.


######################################### 시부모감 #########

by yj4614 | 2010/12/24 19:17 | 기본 | 트랙백 | 덧글(0)

사돈 어른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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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 어른께



겨울 한파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 겨울은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의 혼인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곱게 잘 자란 예진 양을 며느리로 맞는 저희 내외는

크나큰 기쁨을 맛봅니다. 상냥하고 스스럼 없이 잘 어울리니

마치 오래 전부터 만났던 사이인 듯 친근감이 듭니다.

지난 시월 3, 양가 상견례에서 사돈께서 개천절에 하늘이 열리듯

새로운 가정이 열린다며 기뻐하시던 모습에 저희도 흐뭇했습니다.

넉넉하지 못하고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저희 입장을

잘 헤아려주심에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만이 우리 어른들이 보일

모범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빙판을 걷는 아이들의 걸음걸이를 보듯 아슬아슬하지만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어려움조차도 슬기롭게 모두 잘 헤쳐갈 것입니다.

나이 든 우리 세대는 그저 새로운 세대가 이끌어갈 세상을 지켜보면

그만입니다. 급속도로 변하는 시대에 그들은 잘 적응할 것이니.

새 가정에 간섭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해도 그들은 알아서

잘 꾸려갈 것입니다.

함 속이 부실하고 마뜩치 않아도 너그러이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남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고 간소하게 정성으로만 마련했으니.

예단을 과분하게 받고 보니 고맙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세심한 배려에

비하여 저희들 노력이 부족한 듯하여 송구스럽습니다.

앞으로 신세대답게 잘 살기를 기원하며 새로운 출발에 박수를 치며 묵묵히 바라보는 것이 우리 구세대의 몫일 것입니다.

사돈간 양가의 좋은 사이를 바라며 결혼식에서 뵙겠습니다.


2010. 12. 18.


조 성 호 · 이용남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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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4614 | 2010/12/24 19:13 | 기본 | 트랙백 | 덧글(0)

1등 신문답게

 

옴부즈맨 칼럼

1등 신문답게


지난 6개월 동안 이름도 생소하고 모범답안도 못 본 채 옴부즈맨 칼럼을 쓰면서 남의 잘못을 찾고 꼬집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실감했다. 큰틀에서 신문의 흐름을 짚지 못하고 낱말이나 맞춤법이나 거론하며 터럭만 건드린 건 아닌지 후회스럽기도 하다.

연말이면 각종 문학동인들이 만드는 동인지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과연 여기 실은 문학작품들이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그저 단지 작품 발표만으로 끝나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할 시점이다. 남의 글을 평가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여 자기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된다면 스스로 깨닫는 문학인이 될 터인데.

근래 충청권의 가장 큰 이슈는 당연히 ‘국제과학비즈니스특별법’이다. 지난 8일 여당 단독으로 국회에서 처리하며 과학벨트를 충청권으로 명시하지 않아 경상도로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며 충청권이 숭렁이고 있다. 집중적으로 집요하게 이 문제를 추구하며 보도하고 방안을 강구하는 의견들을 싣고 있다.

지난 10일자 ‘충청권 홀대’를 거론한 보도에 이어 지난 14일에도 충북, 충남지사가 ‘국제과학벨트 충청권 조성돼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 17일자 1면에서도 ‘충청권 뜻 모았다’며 대전시장, 충남지사, 충북지사가 모여 대정부 공동 건의문에 서명하고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을 크게 싣고 있다. 밝게 웃으며 사진 찍을 일이 아니고 심각하게 다부진 포즈를 취했어야 했는데 으레 사진 찍을 때는 웃게 된다.

지난 21일자 1면도 ‘과학벨트 입지 선정/충청권 대응 촉각’이란 제하에 내년 정부의 방침과 일정, 예상과 우려를 상세히 싣고 있다.

같은 면 옆에는 청원군 오송에서 열린 보건의료 행정타운 준공식이 ‘2020년 세계 7/HT 강국 도약!’이란 구호가 걸린 기념 사진이 크게 나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을 비롯한 6대 국책기관이 들어서며 오송이 ‘바이오 허브’로 본격적으로 떠오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진이다.

오송역, 오송보건의료 행정타운을 이끌어낸 충청도의 힘이 과학벨트도 이끌어내려면 열정적인 도민의 단결력과 꾸준한 여론, 노력이 절실할 것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충청권 최고 부수의 동양일보가 내년이면 창간 20년을 맞는다. 신문이 권위를 자랑하기보다는 독자에 대한 서비스에 충실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진력할 때 더 많은 독자가 성원할 것이다.

by yj4614 | 2010/12/22 16:44 | 칼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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